도시를 구성하는 수많은 공간에 담긴 의미와 이야기를 기록하는 사람들,
서울시립대학교 실험실 벤처로 태동한 테크캡슐은 황지은 교수를 중심으로 이인규 프로듀서, 이택수 프로듀서, 정동구 감독, 방나영 연구원 등 건축과 기술을 연구하는 전문가 그룹이 모인 팀입니다. 건축을 중심으로 한 기록들이 우리 도시 현장에서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을 바탕으로 다양한 방식을 통해 건축물과 공간을 디지털 기록으로 남기고 있는 테크캡슐이 반포 주공 1단지(1,2,4주구)의 마지막을 담고 있다고 하여 만나보았습니다.
1. 현재 반포 주공 1단지 1,2,4주구에서 진행 중인 프로젝트에 대한 설명 부탁 드립니다.
황지은 교수 현재 구현 가능한 첨단 기술을 활용해 반포 주공 1단지 곳곳을 디지털 데이터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드론과 3D 레이저 스캐너로 전체를 모델링해서 3D 스캔*⑴ 정보를 취득하거나 자율주행 자동차 개발 시 활용되는 슬램 (Simultaneous Localization And Mapping, 동시 위치측정 및 지도화 기술)*⑵ 같은 기술로 디지털 매핑을 시도해볼 예정이에요.
(*편집자 주: (1) 통상 3D 스캔은 LiDAR 기술을 활용하여 공간정보를 취득하는 과정, 즉, 레이저를 주사하여 반사되는 값을 측정하여 공간의 형상정보를 디지털화 해서 기록하는 작업을 말한다. (2) 자율주행 핵심기술인 슬램은 기기가 주변을 탐색해 정밀지도를 만들고,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는 기술이다.)
정동구 감독 반포 주공 1단지는 대지면적만 48만4천여평이라 단지 자체가 굉장히 큽니다. 그래서 우선 거점에 해당하는 중요한 포인트를 설정하면서 시작했습니다. 반포 주공 1단지 1,2,4주구의 평형대는 총 3가지인데 제일 먼저 해당 평행대별로 기록을 남기고, 다음에는 반포 주공 1단지 만의 주거문화를 담으려고 합니다. 특히 국내 최초로 아파트 단지 내 공원 역할을 한 녹지 공간과 공원을 둘러싼 일부 공간들은 최대한 정확하게 담아내려고 노력 중입니다. 슬램이나 드론 등을 이용해서 전반적으로 단지 전체를 기록하되, 테크캡슐이 해석한 몇몇 주요한 공간들은 보다 면밀하게 데이터화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록뿐만 아니라 이를 통해 취합된 데이터들을 추후 어떤 콘텐츠로 승화시킬지도 함께 고민하고 있습니다.
2. 반포 주공 1단지 1,2,4주구를 기록하고 있는 특별한 의미나 건축학적 가치가 있나요?
이인규 프로듀서 반포 주공 아파트는 지금으로부터 50여 년 전인 1974년에 완공된 국내 최초의 대 단지 아파트예요. 당시 금융·정치 등의 핵심기능이 집중된 강북 도심에 비해 강남은 ‘남서울’이라고 불릴 만큼 개발되지 않은 허허벌판이었어요. 1970년대의 정부는 서울시와 대한주택공사를 필두로 강남 지역을 공격적으로 개발했는데, 반포뿐 아니라 대한주택공사가 짓는 주공 아파트 단지에는 그 때 당시의 최고급 시공 기술을 접목해 공사기간을 빠르게 단축하고 완공했습니다. 교수, 의사, 변호사 등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사람도 많이 살았고, 서울의 시민들이 주공 아파트를 분양 받기 위해 엄청나게 긴 줄을 섰어요. 지금이야 성냥갑처럼 지어서 특색 없는 아파트의 형태라고 비하하는 시각도 있지만, 그 시절에는 정말이지 국가적으로 최상의 아파트 단지를 만들기 위해 갖은 노력이 집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택수 프로듀서 현재 지어지는 신축 아파트들과는 조금 다른 개념으로 주공 아파트들을 살펴보자면, 둔촌 주공부터 개포 주공, 반포 주공 아파트는 단지 내 녹지비율이 50%를 상회합니다. 말 그대로 주거공간 반, 녹지 반이죠. 집과 나무와 놀이터 등이 어우러져 하나의 거대한 공원이 단지 안에 있는 건데요, 이건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로서도 매우 높은 비율입니다. 이러한 주거환경은 그 곳에 사는 이웃 간의 소통을 장려하고 삶의 질을 높이는데 결정적으로 작용해요. ‘숲세권*을 원하는 건 지금이나 예전이나 비슷한 것 같습니다.
(*편집자 주: 숲세권은 공원, 강, 산 등 녹지와 가까이 있는 주거단지를 의미하는 신조어다.)
이인규 프로듀서 저는 주공 아파트에 거주한 경험자로서 살았던 공간의 기억을 공유하려는 시도들은 앞으로 더욱 늘어날 거라고 생각해요. 1기 신도시에서 자라난 사람들은 또 그 곳에 살았던 자신만의 이야기를 증언하고 싶어할 것 같고요. 때문에 반포 주공 1단지 1,2,4주구 재건축에서 진행하고 있는 이번 프로젝트가 대한민국 근 현대 건축사를 관통하는 공간 기록의 주요한 출발점으로 보여요.
황지은 교수 현재 아파트 재건축 가능 연한이라고 알려진 30년은 연장된 기준입니다. 예전에는 훨씬 짧았어요. 오늘날의 재건축은 건축물의 구조적인 문제나 물리적인 결함이 이유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일종의 사회적인 합의 하에 재건축·재개발이 진행된다고 봐요. 다양한 이해 관계가 얽혀 1960~90년대에 대규모로 지어진 아파트들이 최근 들어서 재건축이나 리모델링 사업을 열정적으로 추진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몇 년 간은 신규 주택 공급 물량이 지속적으로 늘어날 거라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역사적으로 가치 있는 주공 아파트에 살았던 사람들의 집단적 거주 경험이 단순히 추억으로만 회자 되는 건 사회적 손실 아닐까요? (웃음) 현 시대적 관점에서 최첨단 기술을 활용해 그 공간을 기록하고, 수집한 경험을 토대로 무엇을 버리고 취할 것인지 꾸준히 협의되어야 해요. 이를 바탕으로 여러 관계자가 보다 탁월한 거주공간을 고민하고 도출하는 계기가 마련되어야 합니다.
3. 반포 주공 1단지 1,2,4 주구 프로젝트 외에도, 공간을 기록하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데, 그 과정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점과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황지은 교수 저희는 현재 서울 청계천 일대 도심 제조업을 기록화하는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있어요. 청계천을 둘러싼 을지로, 종로 등에서 깊숙하게 자리잡은 도심의 안쪽을 기록하고 있는데요, 사실상 정확한 지도가 없다고 봐야 해요. 마치 자연 동굴처럼 골목의 골목의 골목 안에 아는 사람만 갈 수 있는 공간을 찾고 기록하는 게 쉽지 않은데. 소규모 제조공장과 미로 같은 길의 형상을 기록하는 3D 스캔 작업은 구역별로 이동하면서 한 땀 한 땀 수공예처럼 이뤄져야 하거든요. 서울시의 의뢰로 여러 전문가 현장 활동가들과 컨소시엄을 이루어 진행하고 있는데요, 저희는 정밀한 스캔 데이터를 조사 팀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제공하고, 데이터를 가공하여 가상현실 콘텐츠로 제작하고 있지요. 신기술이 실제 도시현장에서 어디까지 적용될 수 있는지, 그리고 새로운 건축의 시도로 승화될 수 있는지 실험해보고 싶었어요. 저희가 추출한 원시 데이터는 추후 박물관이나 미술관 등에서 전시회 자료로 활용될 수도 있고, 또, 새로운 도심공장을 계획하고 설계할 때 참고하거나 통찰을 얻을 수도 있겠죠. 용도가 무궁무진합니다.
정동구 감독 덧붙이자면, 사진이나 영상의 경우, 이를 기록하는 사람의 관점이 명확하게 드러나거든요. 지금 저희를 사진 찍으시는 것처럼요. (웃음) 그런데 공간 데이터는 전혀 달라요. 3차원 3D 스캐너는 주로 실측이 까다로운 건물을 측정할 때 많이 쓰이는데요, 이 장비는 반사경의 레이저를 1초에 100만 포인트를 쏘고 실제 현장의 형상 정보를 매우 정밀하게 추출할 수 있어요. 레이저가 닿은 표면의 위치 정보를 저장하기 때문에 형상정보를 어떤 형식으로든 복원하고 가공할 수 있지요.
4. 공간의 기록의 중요성과 그 활용의 확장성에 대해서 강조하셨는데, 테크캡슐의 기록화 작업이 남다른 점은 무엇일까요?
방나영 연구원 테크캡슐은 3D 기술로 지형지물과 형상의 데이터를 자세하게 취득해요. 이것을 후가공하면 실제로는 사라진 공간을 3차원에서 구현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지금 작업하고 있는 반포 주공 1단지가 없어지더라도 한번쯤 그 공간에 돌아가보고 싶은 사람들이 있을 수 있잖아요. 그런 분들을 위해 3차원 디지털 스캔으로 공간을 기록한 데이터가 있다면, 추후에 실제로 그 현장에 돌아간 것처럼 VR, AR, 3D 영상 등의 형태로 생생하게 재현할 수 있는 셈이죠.
황지은 교수 3D 스캔은 하나의 기술적 방법입니다. 공간의 형상을 가장 현실과 비슷하게 취득하는 것이 중요해요. 이를 원시 데이터로 기록하게 되면, 이후 후가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극대화됩니다. 실제 장소에 존재했던 형상의 데이터를 영상, 3D 모델, 가상현실 등으로 얼마든지 구현할 수 있는데, 테크캡슐의 기록은 이러한 확장성을 답보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점 아닐까요? (웃음)
이인규 프로듀서 예를 들어 볼게요. 살던 아파트 단지에 오래된 커다란 나무가 있어요. 나뭇가지의 방향, 근처 벤치의 형태 같은 것들은 사소하지만 그 아파트에 살았던 사람에게는 다 기억에 남아요. 그건 건축도면에서는 알 수 없는 요소들이잖아요. 3D 스캔으로 기록된 점묘화 형태의 원시 데이터는 추후에 실존했었던 건축물과 사물의 형상을 3차원 가상세계로 재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작업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5. 마지막으로, 이주를 완료하고 신축 아파트 공사를 앞둔 반포주공 1단지 1,2,4주구 조합원 분들께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황지은 교수 반포 주공 아파트는 동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주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어요. 기록이 점점 중요해지는 시대라, 후대에 필요한 정보로써 가치 있는 건축물을 기록한다는 데 의의를 두고 시작했습니다.
정동구 감독 저희가 기록을 시작한 즈음 조합원 이주가 모두 완료되었어요. 만약 살고 계신 분들이 있었다면 단지 안에서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 거주의 의미를 물어보는 다큐멘터리적인 속성이 강했을 것 같아요. 이제는 아무도 살지 않은 아파트 단지라는 점은 3D 스캔에 매우 용이해요. 작업하면서 인상 깊었던 건, 여전히 반포 주공 1단지의 관리사무소가 기능한다는 점* 이었어요. 주민들이 이사 나갔는데 단지 안의 도로나 놀이터, 쉼터, 옥상 등이 깨끗하게 청소되어 있죠. 단지 곳곳을 돌면서 3D 스캔을 하다 보면, 그러한 현장이 고스란히 디지털화되어 담깁니다. 아무도 없는 빈 단지의 풍경과 사물 자체의 물성을 3D 스캔만 해도 기록의 서사가 완성될 수 있다고 봅니다.
이인규 프로듀서 보통 재건축 과정에서 여러 이해관계가 부딪히기 때문에 조합원 이주가 시작되면 아파트 단지의 공동관리는 사실 거의 손을 놔버리세요. 철거를 앞뒀으니까요. 그런데 반포 주공 1단지는 지금도 3D 스캔을 위해 동네를 돌아다녀보면, 이 거대한 공간의 마지막이 이렇게까지 깨끗하게 마무리될 수 있을까 생각이 들 정도예요. 기존에 거주하고 관리한 분들이 집과 동네를 대하는 태도가 남다르다고 느꼈습니다. 공동주택이다 보니까 내 집뿐 아니라 반포 주공 1단지 전체를 ‘우리 동네’라고 여긴다고 할까요? 진심으로 본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끝까지 관리를 놓지 않는 이러한 품위 있는 마무리가 다른 재건축 단지에도 조금 더 알려졌으면 좋겠습니다.
(*편집자 주: 본 인터뷰는 2021년 12월 10일 진행되었으며, 반포 주공 아파트 1단지의 1,2,4주구관리사무소는 2021년 12월 31일까지 조합과 계약을 맺고 단지 구석구석을 관리하고 있었다.)
이택수 프로듀서 참, 마지막이라고 하시니까, 이번 반포 주공 1단지 1,2,4 주구 프로젝트에 시공사인 현대건설과 조합, 관리사무소에서 저희가 원활하게 작업하도록 도움을 주셨어요. 덕분에 가상세계를 구현할 수 있는 3차원 데이터로 반포 주공 아파트가 기록되고 있는 거죠.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웃음) 기회가 닿는다면 반포 주공 아파트 1단지 전체를 기록한다는 공익적인 목적 차원에서라도 3주구도 3D 스캔으로 기록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일동 (웃음)
테크캡슐 Techcapsul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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