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9월 6일, 재건축·재개발 추진위원회의 업무범위를 규정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제32조’에 대한 법제처 법령해석(19-0206)이 공개되면서 정비업계는 대혼란에 직면했습니다.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제32조(추진위원회의 기능) ① 추진위원회는 다음 각 호의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 1. 제102조에 따른 정비사업전문관리업자(이하 “정비사업전문관리업자”라 한다)의 선정 및 변경 2. 설계자의 선정 및 변경 3. 개략적인 정비사업 시행계획서의 작성 4. 조합설립인가를 받기 위한 준비업무 5. 그 밖에 조합설립을 추진하기 위하여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업무 ② 추진위원회가 정비사업전문관리업자를 선정하려는 경우에는 제31조에 따라 추진위원회 승인을 받은 후 제29조제1항에 따른 경쟁입찰 또는 수의계약(2회 이상 경쟁입찰이 유찰된 경우로 한정한다)의 방법으로 선정하여야 한다. <개정 2017. 8. 9.> ③ 추진위원회는 제35조제2항, 제3항 및 제5항에 따른 조합설립인가를 신청하기 전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방법 및 절차에 따라 조합설립을 위한 창립총회를 개최하여야 한다. ④ 추진위원회가 제1항에 따라 수행하는 업무의 내용이 토지등소유자의 비용부담을 수반하거나 권리ㆍ의무에 변동을 발생시키는 경우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항에 대하여는 그 업무를 수행하기 전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비율 이상의 토지등소유자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
법제처 법령해석에 따르면, ‘조합설립추진위원회(이하 ‘추진위원회’)의 업무 범위에는 조합의 업무 범위에 속하는 업무를 정비사업 전문관리업자(이하 ‘정비업체’)에게 위탁하거나 그에 관하여 자문을 받기로 하는 것이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는 추진위원회 단계에서 도시정비법에 근거하여 선정된 정비업체가 있다 하더라도 조합설립 이후에는 절차를 거쳐 새로이 이를 선정해야 한다는 것으로 귀결되기 때문입니다.
법제처의 법령해석에 업계 관계자들이 반발한 이유
19년 당시 법제처의 이러한 법령해석에 업계 관계자들 대부분이 반발하였는데 여기에는, ① 도시정비법 제32조 제1항 제1호는 추진위원회가 선정하는 정비업체의 업무 범위나 활동 시한을 제한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하지 않고 있다는 점, ② 초기부터 청산단계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아우르며 주요 사안에 관여하며 조력하는 정비업체 업무의 특수성을 고려했을 때 그 단절(새로운 정비업체로의 교체)이 이루어지는 경우 입찰절차와 총회의 개최를 수반하기에 사업비의 증대 또는 사업 진행의 지연이 필연적으로 야기될 수밖에 없어 효율성 측면에서 큰 손실이 발생하게 되는 점, ③ 창립총회는 조합원만이 참석자격 및 의결권을 갖는 것으로 조합 설립 이후의 조합원 총회와 참석 대상이 동일하므로, 적어도 창립총회의 추인결의가 있는 경우에는 추진위원회가 선정한 정비사업전문관리업자의 지위 또한 조합에 승계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점 등 많은 이유가 있었습니다.
추진위원회 단계에서 이미 정비업체를 선정한 대부분의 조합은 서로 눈치를 보며 정비업체 재선정 절차를 진행할 것인지에 대한 판단을 미루어왔고, 관련 규정은 1년 이상 방치되며 현장에서는 추진위와 조합뿐만 아니라 지자체마저도 정비업체의 승계에 대한 갈피를 잡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법제처의 유권해석 후에도 관련 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자 법원에서도 엇갈린 판결이 나오기에 이르렀습니다.
혼란을 야기한 두 재판부의 판결문, 그 후 논란의 종식 예고
그러던 중 2020년 7월 대전지방법원에서는 ‘추진위원회 시절 선정된 정비업체를 조합원 총회 결의와 일반경쟁입찰의 과정도 거치지 않은 채 먼저 조합과 계약을 맺은 후 총회에서 재인준하려는 것으로 도정법 위반’이라는 주장에 추진위원회 단계에서 선정된 정비업체 및 설계자는 조합설립 후 조합에 포괄 승계되며 이를 인준하기 위한 안건은 적법하다는 취지의 결정을 내렸습니다(대전지방법원 2020. 7. 17.자 2020카합68 결정)¹. 서로 눈치만 보며 법원의 판단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던 업계 관계자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불과 2개월 뒤 청주지방법원이 사업시행인가, 관리처분계획인가, 이전고시, 조합해산 등 조합설립 이후의 업무까지 정한 추진위원회와 정비업체의 용역계약 체결은 무효에 해당한다고 판단하면서(청주지방법원 2020. 9. 18. 선고 2019나13040 판결)² 상황은 급격하게 반전되기에 이르렀습니다.
다만 두 재판부의 판결문(결정문)에 기재된 해당 쟁점에 대한 기술은 탄탄한 논리로 뒷받침된 것이 아니기에 언제라도 뒤집힐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다시 시작된 혼란은 정비사업의 요체(要諦) 중 하나인 신속성을 저해하면서 동시에 불안정한 지위에 놓인 정비업체의 활동 동력을 잠식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다시금 수개월이 흐른 뒤, 이러한 논란의 종식을 예고하는 판결이 2021. 5. 27. 전주지방법원에서 선고되었습니다. 그 주요 내용은 ‘재개발조합이 추진위원회에서 선정한 정비업체와의 용역계약을 창립총회를 통해 포괄 승계한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내린 전주시장의 시정명령처분은 위법한 것으로 취소되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판결은 전주시장이 항소를 제기하지 않으면서 2021. 6. 15. 확정되었습니다. 앞서 언급했던 법원의 판단들과 다른 의미가 부여되는 것은 비단 최근에 내려진 판결로, 구체적인 판단의 이유를 설시 하였다는 점이 고려되었습니다.
1. 총회개최금지가처분 사건
2. 정비업체가 조합에 대하여 가지는 용역대금에 대한, 추심명령에 기초한 추심금 청구 사건. 현재 대법원 계류 중(대법원 2020다272356)
논란 종식을 예고한 재판부의 주요 판결 이유
주요 판결 이유를 살펴보면, ①도시정비법 제32조 제1항 제1호가 정비업체의 선정 및 변경을 추진위원회가 수행할 수 있는 업무로 정하고 있고 동법 제34조 제3항에 따라 추진위원회의 업무와 관련된 권리·의무는 조합에 포괄 승계된다는 점, ②도시정비법 제45조 제1항 제6호는 추진위원회 단계가 아닌 조합설립 이후 비로소 정비업체를 선정하려는 경우에 적용되는 규정이라고 봄이 적절하다는 점, ③본 사건 계약의 용역업무 범위에 추진위원회의 업무범위를 초과하는 것이 일부 포함돼 있지만 이런 사정만으로 용역계약을 무효라 단정할 수는 없다는 점, ④창립총회의 승계 결의만으로 부족하다면 다시 조합총회를 개최하여 용역계약의 포괄승계를 의결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점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구체적인 근거가 적시된 판결이 최초로 공개되었는데도, 왜 ‘완전한’ 종식이 아닌 ‘예고’에 불과하다는 표현을 쓸 수 밖에 없는 것일까요? 우리에게 절대적 기준이자 지침은 대법원 판례입니다. 하급심 판결은 당해 사안을 제외하고는 가이드라인의 의미 정도로 고려할 수 있습니다. 단적인 예로, 무수히 많은 조합원의 개인 정보를 침해하는 ‘휴대전화 번호가 전부 기재된 조합원 명부’의 공개 의무와 관련하여 수사기관 및 하급심의 판단은 꽤 오랜 시간 동안 통일되지 않았고 조합원들의 개인정보보호에 대한 인식 제고와 맞물리게 되면서 이와 관련한 갈등이 고조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올해 초 ‘전부 공개해야 한다’는 대법원의 판단(대법원 2021. 2. 10. 선고 2019도18700 판결)이 이루어진 이후 이에 대한 논란은 완전히 일소(一掃)된 바 있습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대법원 2020다272356 사건(앞서 언급한 청주지방법원 2019나13040 사건의 상고심)에서 명확한 판단이 이루어진다면, 조합 추진위원회 업무 범위 논란의 완전한 종식은 의외로 빠르게 다가올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위 기고문은 도시정비사업 관련 법률적 이해를 돕고자 전문가의 의견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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